집집마다 서가에 육중한 백과사전이 자리를 잡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온갖 내용을 총망라한 수십 권짜리 두꺼운 백과사전은 지식의 만물상이자 보고였다. 그 많던 백과사전이 인터넷과 포털에 밀려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CD 사전이 나오기도 했지만 예전의 명성을 되찾지 못했다. 지금은 온라인을 통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1768년 영국에서 최초로 출간되었다. 한글판으로 제작되어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하지만 2012년을 마지막으로 출판을 중단하면서 244년만에 종이 책 백과사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아날로그 시대를 상징하는 구시대의 유물로 이름을 올렸다. 앱이나 웹 서비스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과거의 위상과 비교할 바가 못된다. 이런 브리태니커가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구글이 만든 크롬 브라우저의 확장 프로그램을 통해 활력을 모색하고 있다.

크롬 확장 프로그램은 브라우저에 자신이 원하는 기능을 선택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외국어 문장을 즉각 번역해주고, 지겨운 인터넷의 광고를 보이지 않게 하고, 보고 있는 인터넷 화면을 오려서 노트에 저장할 수도 있다. 브리태니커의 ‘브리태니커 인사이트(Britannica Insights)’ 확장 프로그램은 인터넷을 보면서 의문이 들고 궁금한 것을 브리태니커 자료에서 곧바로 찾아볼 수 있게 해준다.

브리태니커 검색 화면 캡처

인터넷과 포털을 검색하면 정보가 넘쳐난다. 누구나 정보를 만들고 올릴 수 있다. 정보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탈이다. 이런 정보 과잉의 시대에 브리태니커의 시도는 전혀 새롭거나 획기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브리태니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브리태니커는 보도자료에서 ‘신뢰할 수 있고, 검증된 정보’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가짜뉴스로 오염되고 그릇된 정보가 만연한 불신의 시대가 브리태니커의 검증된 정보 자료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읽혀진다.

브리태니커의 글로벌 CEO인 카틱 크리슈난(Karthik Krishnan)은 인터넷 검색 결과가 사실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얻기가 어려워진 이유를 4가지를 들어 설명한다. 첫째는 현재의 검색 알고리즘으로는 팩트와 그럴듯하게 꾸며낸 거짓 정보를 분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검색 알고리즘은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것을 우선 순위로 삼는다. 알고리즘이 개발자의 의중이나 편견을 담고 있을 수도 있다. 검색 결과가 광고와 연계되기도 한다.

쉽게 찾고 쉽게 믿으며 빠른 것만을 추구하는 인터넷 이용자들의 행태도 문제로 지적한다. 검색 결과의 앞부분만 보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검색의 첫 페이지를 넘겨 뒷부분까지 시간을 들여 꼼꼼히 살펴보는 사람은 5%가 채 안된다고 말한다. 누구나 참여해 지식이나 정보를 올리는 위키피디아는 그 장점에도 불구하고 신뢰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편집자의 의견과 주장에 따라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다. 소셜 미디어도 출처와 근거를 알 수 없는 내용이 난무하며 정보의 불신을 가중시킨다.

그의 시각과 주장은 ‘브리태니커 인사이트’에 대한 홍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터넷과 포털은 브리태니커를 쇠락하게 만든 거대한 경쟁 상대다. 하지만 정보 불신의 원인과 진단은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속도를 추구하는 디지털의 흐름은 옳고 그름과 사실과 거짓의 경계를 무디게 했을 뿐 아니라 이를 확인하려는 이용자들의 노력도 게을리 하게 만들었다. 브리태니커 확장 프로그램은 정보 불신 시대의 또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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