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1일, 유럽의회 법제위원회((European Parliament Committee on Legal Affairs)는 ‘로봇에 관한 시민법 위원회’에 대한 권고사항이 담겨있는 발의 초안을 마련했습니다. 여기에는 로봇들의 지능과 자율성이 높아지고 노동시장을 잠식하고 있으므로, 세금문제에서부터 법척책임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연관되는 모든 부분에 대해 재고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법제위원회가 주장하는 부분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로봇으로 인한 사고 발생시 이에 대처하기 위해 사용자가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무인 100%의 작업장이 실현되기 까지는 로봇과 인간은 함께 작업을 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게 될지도 모를 사고에 대해 대비책인 셈입니다. 다음으로 사회보장제도와 관련된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로봇이 일자리를 차지하게 될 경우 지금까지 노동자와 고용주가 분담해온 각종 사회보장제도들은 그 재원이 사라질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에 처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로봇의 행동을 규정하게 될 프로그램 소스 코드에 관한 접근의 문제입니다. 사고가 날 경우, 사고 원인에 대한 엄밀한 조사를 위해 소스 코드에 접근을 허용하며, 로봇을 제조하는 시점에서 미리 프로그래머들이 작성하는 코드들을 윤리적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로봇의 제작 전(前) 과정부터 사후 관리 과정까지 철저하게 감독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이들은 “최소한 가장 정교하게 자율화된 로봇들만이라도 특정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 전자인간의 지위를 가지도록 법안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이면서, 산업현장에 로봇을 도입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여파를 고려한 권고안을 제출했습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의회의 모습, 출처:Pixabay.com>
이러한 내용에 대하여 관련업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VDMA(독일 내 기계엔지니어링 관련 중소기업협회)의 상임이사인 틸로 브로트만은 EurActiv.com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동화가 결코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로봇을 의인화하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규제’들이 산업의 혁신을 제한할 것이며, 로봇에 대한 세금을 바탕으로 한 기본소득제도에 대해서는 매우 나쁜 생각이라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로봇의 경우 산업현장에 도입되는 속도는 빠른 반면, 이에 따른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대처 방안이 나오질 않고 있습니다. 일자리에 대한 예측과 이에 따른 불안감, 그리고 새로운 사업기회를 노리는 기업들의 기대만이 주된 정서를 형성하고 있는 시점에서 유럽연합 법제위원회의 보고서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사회적, 경제적 여파를 실질적인 관점에서 걱정하고 그 대처방안을 내놓는 노력에 대해서만큼은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비록 로봇으로 인해 분명히 개인들도 편리함을 누릴 수는 있겠지만, 그 개인들의 대부분은 노동시장에서 약자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약자를 보호하기위한 사회보장제도가 토대에서부터 흔들릴 수 있다면, 로봇으로 인한 이로움을 강조하는 만큼 개인들의 삶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합니다. 물론 이번의 보고서가 실질적인 구속력을 가지는 법률안 제정으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지만, 앞으로 유럽 국가들이 관련 법안을 제정할 때 근거로 삼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로봇과 사람의 동거를 위한 노력은 이제 첫발을 뗀 것 같습니다.
※유럽의회 법제위원회가 마련한 권고 초안은 여기에서 PDF형태로 보실 수 있습니다
로봇 관련해서는 하루가 다르게 빨리 변화고 있어 사회 인프라 전반이 못 쫓아가고 있는 형국인데. 유럽은 그나마 빠른 접근을 하고 있네요. 부럽습니다. 대한민국는 언제나 이런게 가능할까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