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처럼 깔린 카메라와 짝을 이룬 AI 얼굴인식 기술은 범죄 예방 같은 효용성에도 불구하고 암울한 감시사회를 예고한다. 중국에서 얼굴인식 기술이 소수민족과 반체제 인사를 감시하고 추적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파노라마 사진을 찍으면 인공지능과 결합해 수만 명이 모인 경기장의 모든 사람들을 뚜렷하게 인식해 특정인을 찾을 수 있는 새로운 카메라도 개발되었다. 이 카메라를 활용하면 홍콩의 시위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신원을 모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얼굴인식 기술의 활용이 무서운 속도로 확대되고 빅브라더 사회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와 서머빌, 오클랜드에서는 경찰이나 정부 기관이 얼굴인식 기술 사용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미국의 30개 시민단체 연합은 연방 정부 차원에서 법 집행기관의 얼굴인식 기술의 사용을 금지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사생활 침해와 상시적 감시 체제를 가능케 하는 얼굴인식 기술의 엄격한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전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기술의 속도와 방향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다양하다. 얼굴인식 기술에 대한 반발과 규제 움직임이 커지고 있지만 감시사회의 적은 얼굴인식 기술에만 있는 게 아니다. 굳이 얼굴을 찍지 않더라도 걸음걸이 그 자체만으로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중국의 AI 업체 웨트릭스(Watrix)가 개발한 보행인식(gait recognition) 기술은 걷는 모습과 팔의 각도, 체형 등의 정보를 기반으로 신원 확인이 가능하다. 베이징, 상하이 등에서 중국 공안이 이 기술을 테스트하고 있다. 보행인식은 규제 압박을 받고 있는 얼굴인식의 대안이 될 수 있고, 얼굴인식과 더불어 더 강력한 감시체제를 구축할 수도 있다.
웨트릭스 홈페이지 캡처
바닥에 센서를 설치해 발자국을 분석하는 기술도 있다. 영국의 맨체스터 대학 연구팀은 127명의 피실험자로부터 2만개의 발자국 데이터를 분석해 발가락에서부터 발꿈치까지 바닥에 닿는 시간 등 24개의 개별적 특징을 분석해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집과 직장, 공항 보안 검색대 등에 적용해 99%의 정확도를 보였다고 한다. 이런 기술이 실생활에 적용되면 카메라가 자신의 얼굴을 향하고 있다는 불안심리는 사라지겠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지는 감시 체제는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
심장박동과 숨쉬기 패턴은 사람의 지문처럼 다 다르다. 이것도 감시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미 국방성은 심장박동으로 200m 거리에서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 레이저 기반의 시스템을 공개했다. 젯슨(Jetson)이라는 명칭의 이 기술이 작동되려면 대상자가 서있는 채로 얇은 옷을 입고 있어야 하고, 중간에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지만 기술의 발전 속도는 이런 방식의 감시 체제 구축도 머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인터넷 사용을 위해 집집마다 설치되어 있는 와이파이 기기는 실내 감시 도구가 될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진은 2018년에 무선 와이파이 라우터를 이용해 실내에 사람이 있는지, 몇 명이나 있는 지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사람들이 움직일 때 신호가 차단되고 지나가면 살아나는 시간을 산출하는 방식이다. 또 다른 연구진은 와이파이를 활용한 신호와 움직임에 근거해 사람의 감정 상태와 행동 패턴을 알아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사업화에 나섰다.
감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은 이뿐만 아니다. 모든 사람은 시간당 3,600만개의 미생물 세포(microbial cell)를 방출하는데 이것으로 1년 정도는 사람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게 입증되었다. 이를 응용해 특정인의 미생물 세포를 지속적으로 모니터하면 방문한 장소나 만진 물건, 주변 환경을 기반으로 움직임과 활동 내역을 알아낼 수 있게 된다. 아직은 초기 단계이지만 냄새로도 사람을 인식할 수 있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얼굴이나 지문, 목소리 등 사람마다 다른 특성을 확인하고 식별할 수 있는 기술은 원래 외부의 침입이나 도난 등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 장치로 개발되었다. 그런데 기술의 역습은 감시를 일상화 하고 사생활을 들추는 족쇄가 되게 만들었다. 의료나 건강을 위한 생체 인식 기술도 거꾸로 향하면 똑 같은 위협이 될 수 있다. 얼굴인식에 대한 규제 장치가 마련된다 해도 제2, 제3의 새로운 기술로 감시사회를 둘러싼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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